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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사

신라의 역사

 

서론

신라는 박혁거세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었으며, 왕을 칭하는 거서간으로서 신라를 세었다.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시작하여 935년에 멸망하였다. 신라는 삼국 중에서도 가장 약한 나라로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는 침략에 취약하였다. 어떻게 가장 약한 나라였던 신라가 결국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을까? 이 글에서는 신라의 다양한 사건과 역사를 다루고자 한다.

 

본문

 

내물왕의 안정화 정책

4세기의 17대왕인 내물왕(이때 당시 왕은 마립간으로 칭하여, 원래는 내물 마립간이 옳은 명칭이지만, 편의상 내물왕이라 칭하겠다.)은 정복활동을 통해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진한 지역을 차지하였다. 이때부터 김 씨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권이 확립되면서 중앙집권적인 정치 형태가 드러났고 왕권이 안정되었다. 

 

이때 당시 내물왕은 왜구의 침입을 많이 당하였다. 또한 390년대 즈음 왜의 침임이 잦았으며 199년에는 가야, 왜, 백제의 연합군이 침입하자 평양에 있는 공개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였다. 다음 연도 400년에 광개 토대왕 군사의 도움을 받아 엽합군을 몰아내었으며 고구려의 군대가 신라의 영토에 남아 있었다. 물론 이후 고구려의 간섭을 받으며 살았지만, 고구려의 문화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북쪽으로 중국 문화를 수용하면서 문화적으로도 다양성이 늘었다.

 

지증왕의 안정화 정책

내물왕 이후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5세기 초에는 백제와의 동맹을 맺었다. 5세기 후기에는 6촌을 6부의 행정 구역으로 개편하였다. 지증왕 시기에는 국호를 신라로 세우고, 군주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변경하였다. 지증왕은 우산국을 복속시키고, 지방 세력의 지배권을 확장하였다.

 

법흥왕의 사회제도 개선

법흥왕은 병부를 세워 군제를 개혁하였다. 뿐 아니라 율령을 반포하고, 공복을 제정하는등의 법과 제도를 개선하였다. 골품제도의 개선, 그리고 불교를 수용하는 세력을 포용하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아나 자주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532년에는 낙동강 지역에 있는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를 정복하였다.

 

진흥왕의 신라 팽창

진흥왕은 540년에서 576까지 재림하였던 왕이다. 진흥왕은 부국강병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고,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세웠다. 또한 불교 교단을 정비함으로 사상의 통합을 꾀하였다.  551년에는 백제와 신라가 맺은 나제 동맹을 이용하여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한강 유역을 공격하였다. 553년에는 이를 기반으로 고구려의 지배아래에 있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함경도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한강은 삼국이 모두 탐할 만큼 매우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이다. 농사로 인해서 물을 충당할 수 있고, 농사를 수월하게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강을 차지한 것이 신라의 발전에 가속 페달이 되었다. 이후 562년에 대가야를 정복하며, 낙동강 지역을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수나라와, 당나라와 연맹 관계를 맺게 되면서 군사적으로도 안정화되었다. 이 시기 진흥왕 순수비인 창녕비, 북한산비, 횡초령비, 마운령비 등이 지역 곳곳에 세워졌다.

 

신라의 위기와 삼국 통일

신라의 팽창 이후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진흥왕 시기에 차지했던 땅들을 다시 되돌려 줘야 했으며, 선덕여왕 시기에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으로 대야성까지 빼앗기게 되었다. 이후 시기에 백제와 고구려의 반격을 막아내는 방법을 고안 하였는데, 이때 김춘추와 김유신이 협동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집권 체제를 강화하였다. 이때 백제가 신라로 가하는 공격이 매우 큰 상황이었기에, 신라는 백제를 막는 동안 고구려의 공격을 막기 위해 고구려와의 연합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고구려가 이를 거절한 상황이어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648년 진덕여왕 시기에 당나라와 연합을 맺게 되었다.  두 국가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대동강을 경계로 할 것을 합의하였다.

 

나당 동맹을 맺은 이후에 신라는 백제를 공격하였다. 그 당시 백제의 지배층은 문란했으며, 국력이 약해진 상황이었다. 백제는 무열왕 660년에 사비성이 함락당하면서 멸망하였다. 그 이후에는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고구려는 그 당시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공을 막아 냈지만 이로 인해 국력의 소모가 컸으며, 약해진 상태였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분라이 컸다. 연개소문 이후 연개 소문의 아들들이 갈등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고구려는 당나라의 침공 이후 668년 문무왕 시기에 멸망하였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다.